[이슈] 고(高)물가에 번지는 ‘슈링크플레이션’ 바람

김영란 기자 / 기사승인 : 2022-08-22 03: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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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조업 등에 이어 외식업계에도 확대
- 품질‧맛 유지는 기본... 소비자 이해도 고려해야
▲ 고물가,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를 웃돌며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이미지_pixabay)

 

고물가,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를 웃돌며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두 달 연속 6% 이상을 기록한 것도 23년 8개월 만에 처음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7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08.74로 작년 같은 달보다 6.3% 급등했다.


지속적으로 치솟고 있는 식자재 및 물가로 인해 국민 실생활과 밀접한 8대 외식품목(자장면, 냉면, 김밥, 김치찌개, 비빔밥, 삼겹살, 삼계탇) 평균가격도 한 달 내 모든 품목이 올랐으며, 거기다 폭염‧장마까지 겹치면서 소비자는 물론 자영업자들까지 밥상물가에 한숨짓고 있다.

#쌈밤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 모씨는 요즘 영업을 하기가 두렵다. 연이은 폭염과 장마로 신선식품의 가격이 폭등했고, 특히 채소값은 나날이 고공행진 중이다. 상추 한 박스가 10만원이 넘고 깻잎, 고추, 배추 등도 배 넘게 올라 기존대로 팔아서는 남는 게 없을 지경이다. 올해 초 가격을 한차례 인상한 까닭에 잇따른 가격인상이 손님 감소로 이어질까 싶어 가격을 올려 받지도 못하고 있다. 가격에 민감한 직장인이 많은 상권 특성상 가격인상은 하지 않고 이익을 내려면 결국 반찬 가짓수나 기본으로 나가는 쌈채소의 종류와 양을 줄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고물가 시대, 원가 다이어트
고물가 상황에 대응하기 힘든 자영업자나 생산자들이 가격인상 대신 제품의 크기나 중량을 줄이는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을 택하고 있다. ‘슈링크플레이션’은 1960년대 영국의 경제학자가 만든 용어로, ‘줄어든다’라는 뜻의 ‘슈링크(shrink)’와 ‘물가상승’을 나타내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쉽게 말해 제품의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되 중량을 줄이는 방식이다.


이는 가격인상이라는 소비자의 민감한 부분은 건드리지 않고 원자재 등의 비용을 줄여 이익을 높이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원가상승 때마다 가격을 올릴 수는 없는 상황에서 생산자나 자영업자들이 대응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인 셈이다.


제품가격을 올리지 않고도 수익을 개선할 수 있고, 소비자들의 반발‧이탈을 불러올 가능성이 적은 데다, 간접적인 가격 인상 효과도 볼 수 있어 기업들도 물가 상승기에 주로 활용하고 있다. 비슷한 용어로 ‘패키지 다운사이징(pakage downsizing)’도 제품의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되, 제품의 크기나 용량을 줄이거나 혹은 품질을 낮춰 생산해 비용을 줄이는 경우로 과자, 화장지, 화장품, 세제 등의 제품에 적용된 사례를 볼 수 있다.

 

▲ 최근 식재료 비용의 상승 문제가 지속되면서 외식업계에도 슈링크플레이션이 활용되고 있다.(이미지_pixabay)


외식업계에도 ‘슈링크플레이션’ 바람
이러한 슈링크플레이션은 주로 공산품에서 발견됐지만 최근 식재료 비용의 상승 문제가 지속되면서 외식업계도 이를 활용하고 있다. 기본으로 제공하는 음식의 양을 줄이고, 기존 반찬의 가짓수나 양을 적절히 조절해 비용을 줄이는 사례도 있다.


처음 기본으로 나가는 반찬의 양을 조금씩 줄이고 추가를 원하는 고객들에겐 유료로 일정금액을 받기도 한다. 또 치킨이나 피자의 경우 기본제공 소스의 종류를 줄여 비용을 절감하고 많이 오른 식자재를 대체하는 식재료를 이용해 조리하기도 한다.


고객들은 고물가 상황을 체감하고 있지만 가격인상에 대해선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배달의민족 사장님광장 ‘고객연구소’에서 2022년 7월 13일부터 19일까지 배달의민족 앱사용자 8,20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고객 10명 중 9명은 ‘높아진 식비’를 체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고객 10명 중 7명은 점심식사를 고를 때 ‘비용’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으로 대답했다.


‘높아진 식재료와 인건비에 가게가 고객들에게 양해를 구한다면, 어떤 부분까지 이해해 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밑반찬 줄이기 59.8%, 가격인상 27.9%, 메인요리 양 줄이기 7.2%, 낮아진 음식 품질 5.9%의 순으로 응답했다. 고객들은 고물가를 체감하고 가게 입장을 이해하지만 가격인상보다 차라리 밑반찬을 좀 줄이는 게 낫다는 것이다.


▲ ‘슈링크플레이션’은 소비자가 알게 모르게 그동안 세계적으로 이용되어왔다. 소위 ‘질소과자’라고 일컬어지는 과자 포장, 2리터 용량인 줄 알았던 용기가 1.75리터로 변경된 음료 등이 그런 예이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_pixabay)


품질‧맛 유지는 지켜져야

‘슈링크플레이션’은 소비자가 알게 모르게 그동안 세계적으로 이용되어왔다. 소위 ‘질소과자’라고 일컬어지는 과자 포장, 2리터 용량인 줄 알았던 용기가 1.75리터로 변경된 음료 등이 그런 예이다.


‘양’보다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라해도 이러한 차이점을 발견한다면 기분이 과히 좋을 수만은 없는 법이다.


최근 한 치킨 프랜차이즈에서 기존 제품보다 2,000원이 싼 신제품을 선 보였지만 뜻밖에 역풍을 맞고 있다. 오리지널 품목에서 200g의 양을 줄였다고 했지만 가격에 대비해 30% 가까이 줄어든 것은 소비자를 기만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회사 측에서는 “출시한 레귤러 메뉴는 소비자에게 가격 부담을 줄이고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 출시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소비자들은 “양이 줄었으니 당연히 가격이 낮아지는게 당연한 것”이라며 “소비자 부담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결국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 상술”이라 비난하고 있다.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를 고려해 원재료비를 줄여 가격인상 없이 이익을 추구하는 전략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이로 인해 제품의 품질이나 맛이 변해서는 안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고객이 ‘가격’ 다음으로 민감하게 여기는 부분이 바로 ‘맛’과 ‘퀄리티’이기 때문이다. 대체되는 재료에 대해 소비자에게 충분한 설명과 이해를 구해야 하는 것도 기본이다.

 

소상공인포커스 / 김영란 기자 supu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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