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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5일 경기도 평택 소재 에스피씨(SPC) 계열의 빵 공장 에스피엘(SPL)의 소스 제조 공정에서 일하던 20대 직원이 작업하던 기계에 끼여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사진_SPC 홈페이지) |
지난 15일 경기도 평택 소재 에스피씨(SPC) 계열의 빵 공장 에스피엘(SPL)의 소스 제조 공정에서 일하던 20대 직원이 작업하던 기계에 끼여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12시간 교대근무에 특별연장근로까지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현장에서 피곤을 호소하던 고인은 퇴근을 두 시간 남짓 앞두고 결국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러한 비극이 단지 고인이 운이 나빠서 일어난 일이었을까?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정의당 이은주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SPL에서 2017~2022년 9월까지 지난 5년간 발생한 37명의 사고재해자 중 끼임사고는 15명으로 40.5%에 해당한다. 이번 사고가 발생하기 일주일 전에도 평택 공장에서는 손이 기계에 끼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사측은 다친 직원이 기간제 협력사 직원이라는 이유로 ‘알아서 치료하라’며 사실상 방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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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섬식품노조와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이 17일 오전 11시 SPL 평택공장 앞에서 ‘SPC그룹 SPL 평택공장 중대재해 사망사고, 철저한 원인조사와 경영 책임자 엄정수사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사진_파리바게뜨공동행동) |
이번 사고는 특정 기계나 장소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라 공장 전반에서 발생한 것으로, 사고가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직원들만 훈계하고 마는 식으로 현장안전의 문제를 방치한 사측의 안일한 안전의식이 비극을 되풀이되게 한 원인이다. 앞선 사고에 대한 안전 후속조치, 사고예방 조치를 했다면 충분히 이번 사고도 예방할 수 있었다는 게 관련자들의 설명이다.
노조 측에 따르면 이번 사고는 사측이 안전 매뉴얼을 무시하고 과중한 업무를 부과하여 발생한 것으로, 매뉴얼은 해당 작업을 실시할 때 2인 1조로 하게 돼 있으나 사고 당시 동료 직원 1명은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다. 안전을 위해서라면 3인 1조 근무를 해야 하지만 회사는 비용 절감의 명분으로 직원들을 과중한 업무량에 내 몰았다는 것이 노조 측의 설명이다.
또 기계 속 이물질이 감지되거나 뚜껑이 열리면 즉시 기계 작동을 멈추는 시스템인 ‘인터록’도 고용노동부 현장 조사 결과, SPL 평택 공장의 배합기 9대 중 7대는 부착되지 않았으며 덮개조차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상적인 안전교육도 시행하지 않고 서명으로 대체했으며, 중대재해 대응 매뉴얼 공유‧교육은 물론 사고 발생 시 신고 방법이나 병원 이송 등에 관한 매뉴얼도 없어 때마다 우왕좌왕했다는 증언도 그동안 얼마나 사측이 무방비 상태였으며 안전문제를 어떻게 대처하는지 예상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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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C그룹 SPL 평택공장 중대재해 사망사고 추모현장(사진_파리바게뜨공동행동) |
무엇보다 이 사건에서 더욱 충격적인 것은 사망 사건 이후 사측의 대처였다. 해당 공장은 사고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도 없이 사고 기계를 흰 천만 덮고 옆 라인 기계들을 곧장 가동 재개했으며, 사고 현장을 수습했던 현장 직원들까지 출근시키는 비인간적인 면모도 보였다.
특히나 그 와중 해외진출 9번째 매장을 홍보하는 대대적인 보도자료를 내 사건을 희석시키려는 게 아니냐는 세간의 비판을 받았으며, 고인의 빈소에 조문 답례품이라며 파리바게뜨 빵 두 박스를 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분노를 사며 불매운동까지 확산되게 하고 있다. 재해 매뉴얼의 부재뿐 만이 아니라, 직원들이나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이나 배려가 없는 사측의 비인간적 행위는 질타 받아 마땅하다.
기가 막히는 것은 SPL 평택공장은 2020년 정부의 ‘대한민국 일자리 으뜸기업’으로도 선정돼 최근 3년간 고용노동부의 정기근로감독도 면제받았으며, 2016년 최초로 안전경영사업장 인증을 받은 뒤 2019년과 올해 5월 두 차례 산업안전공단으로부터 안전보건경영시스템 인증도 받은 곳이라는 점이다. 중요사고들에 대한 안전장치 설치 등을 제대로 점검하지도 않고 안전 인증을 내줬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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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의 미흡한 대응에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허영인 SPC 회장은 21일 ‘대국민 사과 및 재발 방지 대책 발표문(이미지_spc 홈페이지) |
회사의 미흡한 대응에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허영인 SPC 회장은 21일 ‘대국민 사과 및 재발 방지 대책 발표’를 열어 총 1000억원을 투자해 그룹 전반의 안전경영 시스템을 대폭 강화하고, 직원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를 정착시킬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발표 후 질의응답 없이 자리를 떠나 면피용의 형식적 행위가 아니냐며 원성을 사기도 했다.
경찰은 SPL 대표이사를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입건했으며, 평택공장 공장장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하지만 책임자 몇 명만 처벌하고 마는 형식적인 조치가 아니라 철저한 원인 조사로 근본적인 재발방지대책 마련하고, 기존 법규나 제도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에 대한 철저한 검증작업도 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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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C 불매운동 1인 시위(사진_파리바게뜨공동행동) |
산업안전에 대해 수차례 강조해 오고 있음에도 생명과 직결되는 산업현장의 안전은 여전히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노동자들의 삶의 현장이 되어야 할 곳이 ‘죽음의 현장’이 되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그들의 피, 땀, 눈물로 얼룩진 ‘빵’을 식탁에 올리며 아무렇지도 않게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법적인 처벌은 차지하고서라도 최소한 ‘인간에 대한 예의’는 지킬 수 있는 기업의 윤리적 모습을 기대하는 건 과한 욕심일까.
소상공인포커스 / 김영란 기자 supu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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