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의 달人] 한 자리에서 37년, 이학박사 원장의 가위질은 오늘도 계속된다

이경희 기자 / 기사승인 : 2025-03-07 09:5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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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잠자리 미용실 노인선 원장 — 단골 90%, 가격 동결 30년,
박사학위와 기능장까지… 동네 미용실이 이뤄낸 기적 같은 이야기
▲ 을지로에 위치한 고추잠자리 미용실 매장 전경. (사진 = 이경희 기자)

 

 

서울 어느 골목, 빛바랜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고추잠자리 미용실'. 37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작은 가게는, 단골 비율이 90%에 달하고 전국 각지에서 손님이 찾아오는 숨겨진 명소다. 원장 노인선(58)씨는 1967년생으로, 1988년 이곳에서 처음 가위를 들었다.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이학박사 학위를 따고 대학 겸임교수까지 됐지만, 그는 여전히 이 자리에서 손님의 머리를 손수 다듬는다.


① 가위를 든 이유 — 배고픔과 꿈 사이에서
노인선 원장이 미용을 시작한 것은 순전히 생존을 위해서였다. 1980년대, 개인도 국가도 가난하던 시절, 먹고 살기 위한 선택이 필요했다. "그때는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 자체가 목표였어요." 하지만 단순한 생계수단이 아니라, 그는 미래 가능성까지 내다봤다.


Q. 미용을 선택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그 당시 미용이 미래지향적인 분야였어요. 공업시대가 지나고 산업사회, 서비스 산업이 발달하면서 미용이 떠오르는 새로운 분야로 주목받고 있었죠. 단순히 먹고살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지만, 이 분야가 성장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을지로 보급미용학원에서 6개월 과정을 마친 뒤, 현재 미용실 건물에서 학원 선생님 밑에서 몇 달간 실무를 익혔다. 이후 명동에서 스텝으로 1년 반, 강남 미용실에서 준디자이너로 3년을 보낸 끝에, 처음 미용을 배웠던 바로 이곳에서 1988년 3월 창업의 첫 발을 내디뎠다.
 

▲ 고추잠자리 미용실 매장 내부. (기자 = 이경희 기자)


② 36년의 무게 — 한 자리가 지닌 힘
1988년 3월 개업 이후 36년. 그는 한 번도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한자리에서 오래 하다 보니 90%가 단골과 소개 예약이다." 놀라운 건 그 단골들이 가져다 주는 입소문의 힘이다. 손님 머리를 보고 지나가던 행인이 미용실을 물어보는 일도 흔하고, 천안·포천·대전 같은 지방에서도 일부러 찾아온다.


Q. 전국에서 손님이 찾아오는 비결이 뭔가요?
80년대 이전의 기술과 21세기 신기술을 모두 보유하고 있어요. 트렌드에 맞춰 빠르게 변화할 수 있기 때문에 동네 미용실이지만 다양한 연령층의 고객이 있습니다. 미용실은 100%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고, 주중 3일 영업하고 나머지 3일은 강의나 외부 출장을 나가요.


③ 경영 철학 — '정'으로 가격을 묶다
노 원장의 경영 원칙은 간단하지만 파격적이다. 오래된 단골 손님에게는 처음 가격을 유지한다. 수십 년 전 책정한 요금 그대로다. "사업은 영리목적이지만, 미용은 사람을 계속 만나는 시스템이다. 사람 간의 정이 중요한다." 처음 오는 손님은 현 시세에 맞게 받지만, 관계가 지속되는 고객에게는 가격을 올리지 않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Q. 오래된 손님에게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 손해 아닌가요?
가격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편안하게 오실 수 있게 하고 싶어요. 그분들이 저를 믿고 37년을 찾아주셨는데, 그 신뢰를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잖아요. 매년 교육에 투자해서 기술을 높이면, 자연히 새 손님은 높은 시세로 받을 수 있으니까요.


④ 박사학위와 기능장 — 동네 미용사의 한계를 넘다
그는 단순한 '동네 미용사'로 멈추지 않았다. 2021년 보건향장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국가가 최고 기술을 인정하는 기능장 자격도 취득했다. 현재는 대구 계명문화대학교 겸임교수로 강의를 나가고 있으며, 2020년부터는 은평병원 간호사들에게 환자 위생 미용 교육까지 진행하고 있다.
 

▲ 계명문화대학교 겸임교수로 강의 중인 노인선 원장. (사진 = 이경희 기자)


Q. 가게를 운영하면서 박사학위와 교수직까지 병행하는 것이 힘들지 않았나요?
매년 추가적인 강의나 교육으로 스스로에게 투자하는 것이 제 원칙이에요. 고객께 더 나은 서비스를 드리려면 제가 계속 성장해야죠. 박사학위도, 기능장도 결국 손님을 위한 투자입니다. 배움을 멈추는 순간 기술도 멈춰요.


⑤ 정부 지원에 대한 솔직한 목소리
소상공인 정책에 대해서도 현실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소상공인 교육은 굉장히 좋은 정책"이라고 말하면서도, 문턱이 너무 높다는 점을 지적한다. "잘 몰라서 신청을 못하거나, 접수 방법이 복잡하고 서류가 많아서 포기하는 분들이 많아요." 본인도 신청 방법을 알게 된 후에야 혜택을 받았고, 지금은 주변 소상공인들에게 직접 신청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Q.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좋은 교육과 지원이 있어도 소상공인들이 접근하기 어렵다면 소용이 없어요. 절차를 간소화하고, 홍보를 더 적극적으로 해서 실질적인 혜택이 더 많은 분들께 닿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 도움을 받아서 강사로 지원해 직접 교육을 드리고 싶습니다.


⑥ 예비창업자에게 — "전문성을 먼저 정하라"
37년 내공을 지닌 원장의 조언은 명확하다. "요즘은 미용도 세부 전문 분야로 나뉘어요. 어떤 기술 마인드로 고객에게 다가갈지 본인이 스스로 정하고, 그 분야를 충분히 준비한 뒤에 도전하다." 시대별로 고객은 새것을 원하기 때문에, 전문성을 갖추고 계획을 세운 후 충분히 발전시켜 창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소상공인포커스 / 이경희 기자 leegh0224@bizfocu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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