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 글로벌 벤치마킹 ⑨] 싱가포르는 왜 바이오산업을 국가의 미래로 선택했는가

서영현 기자 / 기사승인 : 2026-11-04 14:5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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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가포르 바이오메디컬 산업의 성장은 기업 유치보다 연구기반 조성을 앞세운 국가 전략에서 출발했다. 기초과학 연구기관 설립과 해외 우수 인재 확보, 정부의 지속적인 투자, 글로벌 제약기업 유치를 단계적으로 추진하며 20여 년에 걸쳐 산업 생태계를 구축했다.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사진=챗GPT)

 

 

국토도 자원도 부족했던 도시국가 싱가포르는 왜 바이오메디컬 산업에 국가의 미래를 걸었을까. 그 배경에는 산업을 육성하는 수준을 넘어 국가 경쟁력을 다시 설계하려는 장기 전략이 있었다. 

 

2000년을 전후한 싱가포르는 새로운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었다. 전자산업과 석유화학, 항만물류, 금융산업을 기반으로 아시아의 대표적인 경제국가로 성장했지만, 기존 성장모델만으로는 미래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었다. 중국은 세계 제조업의 중심으로 빠르게 부상했고,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낮은 생산비를 앞세워 글로벌 생산기지를 확대하고 있었다. 노동집약적 제조업은 더 이상 싱가포르의 경쟁우위가 될 수 없었다.


싱가포르가 가진 가장 큰 한계는 국토와 자원이었다. 국토는 약 730㎢에 불과했고, 천연자원도 거의 없었다. 인구 역시 대규모 제조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기에는 제한적이었다. 정부는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존 산업을 확대하는 대신, 연구개발과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국가 경제를 재편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그 결과 2000년 싱가포르 정부는 바이오메디컬 산업을 전자·화학·정밀공학에 이은 국가의 네 번째 제조업 성장축으로 공식 육성하기 시작했다. 이는 의료산업을 키우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 미래 국가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산업전략이었다. 정부는 바이오산업이 고급 연구인력과 특허, 첨단 제조업, 글로벌 투자,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동시에 창출할 수 있는 분야라고 판단했다. 당시로서는 장기간 투자와 높은 실패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선택이었지만, 싱가포르는 단기 성과보다 미래 산업 기반 구축을 우선했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기업 유치부터 시작하지 않았다. 먼저 연구기반을 구축했다. 1980년대 중반 분자세포생물학연구소(IMCB)를 설립해 기초 생명과학 연구를 시작했고, 해외 우수 연구자를 유치하며 연구역량을 축적했다. 이후 정부 연구기관을 확대하고 대학과 병원, 연구소를 연결하는 체계를 마련한 뒤 글로벌 제약기업을 유치하는 순서로 산업을 육성했다.


이러한 접근은 산업정책의 중요한 특징을 보여준다. 많은 국가는 기업이 성장한 이후 연구기관과 제도를 보완하지만, 싱가포르는 연구역량과 인재를 먼저 확보한 뒤 산업 생태계를 구축했다. 연구가 기업을 만들고, 기업이 다시 산업을 성장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국가가 설계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 필립 여(Philip Yeo)였다. 그는 싱가포르 경제개발청(EDB)과 A*STAR를 이끌며 바이오산업 전략을 총괄했다. 세계적인 과학자를 직접 영입하고, 연구기관과 글로벌 제약기업, 대학을 하나의 혁신 생태계로 연결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그의 전략은 단순한 연구개발 지원을 넘어 연구성과가 산업과 투자로 이어지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정부의 투자도 과감했다. 싱가포르는 2006년부터 2015년까지 바이오메디컬 연구개발과 인재 양성, 연구 인프라 구축 등에 약 73억 싱가포르달러를 투자했다. 같은 기간 민간에서도 약 137억 싱가포르달러 규모의 투자와 연구개발이 이루어졌다. 현재는 세계 10대 바이오제약기업 가운데 8개 기업이 싱가포르에 연구 또는 생산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바이오메디컬 생산시설도 60곳 이상으로 확대됐다.


이러한 성과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연구기관 설립, 인재 육성, 장기적인 정부 투자, 글로벌 기업 유치가 20년 이상 축적되면서 하나의 산업 생태계가 형성된 결과다. 싱가포르는 바이오기업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바이오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든 것이다.


※ Decision Point
2000년, 싱가포르는 바이오메디컬 산업을 국가의 네 번째 성장축으로 공식 채택했다.
이 결정은 새로운 산업 하나를 육성하는 정책이 아니었다. 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연구와 인재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장기 전략의 출발점이었다.


※ Timeline
1985년 : 분자세포생물학연구소(IMCB) 설립 추진
1987년 : IMCB 출범
2000년 : 바이오메디컬 산업 국가 성장전략 채택
2003년 : Biopolis 1단계 개장
2006년 이후 : 글로벌 제약기업과 연구기관 본격 입주


※ Key Person
필립 여(Philip Yeo)
싱가포르 경제개발청과 A*STAR를 이끌며 바이오산업 국가전략을 설계한 핵심 인물이다. 연구기관 설립과 세계적 과학자 영입, 글로벌 제약기업 유치, 바이오 클러스터 조성을 주도하며 오늘날 원노스 생태계의 기반을 마련했다.


※ Global Data
정부 투자(2006~2015년) : 약 73억 싱가포르달러
민간 투자 및 연구개발 : 약 137억 싱가포르달러
세계 10대 바이오제약기업 진출 : 8개
바이오메디컬 생산시설 : 60개 이상


※ 소상공인포커스 시사점
싱가포르 사례는 미래 산업이 시장의 자생적 성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정부는 먼저 연구기관과 인재를 육성하고, 장기적인 연구개발 투자를 지속했으며, 그 기반 위에 글로벌 기업과 민간투자를 연결했다. 산업 생태계는 기업이 아니라 국가의 전략적 선택과 꾸준한 투자에서 시작된다는 점이 싱가포르 바이오산업이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소상공인포커스 / 서영현 기자 93oliv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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