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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젤 뷰티(Angel beauty supply) 최점균 대표(사진=김영란 기자) |
1903년 파인애플과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위해 하와이로 대거 이민한 것을 시작으로 미국으로의 한인이민은 100여년이 훨씬 넘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노동계약 종료로 미국 본토로 이동한 이들은 ‘기회의 땅’에서의 새로운 출발과 성공을 위해 보다 장기적인 자영업을 선택해 각 지역에 정착했다. 이민 초창기 세대들의 노력을 바탕으로 자영업을 통해 경제적 기반을 잡아간 미주 소상공인들은 현재 미주 전지역 6만여 개에 달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지역경제 발전에 중요 역할을 해 오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결혼, 학업, 사업 등 미국 이민을 하는 사람들의 이유 또한 다양해 졌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미국 내에서 정착을 시도하지만 제한된 자본력과 기술 탓에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러한 가운데 선택한 일이 자영업이었지만 여러 악조건을 극복하고 모두가 한 마음으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해 온 결과, 이제는 한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 소상공인이 아니라 미국은 물론 전세계의 관심과 영향력을 행사하며 발돋움을 하고 있다. [편집자 주]
미국 화장품과 뷰티 시장 규모는 840억 달러(한화 약 101조 원)로 세계 화장품 산업의 22%를 차지할 정도로 전세계 최대 규모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화장품, 염색약, 가발, 각종 액세서리 등 미용 관련 용품을 취급하는 ‘뷰티 서플라이(beauty supply)’는 한인들이 거의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점유율이 높다.
개인의 성공에서 나아가 한인 경제사회 발전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미국 샌프란시스코 근교에서 뷰티 서플라이샵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최점균 대표를 만나 그동안의 성장 과정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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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점균 대표가 운영 중인 엔젤 뷰티(Angel beauty supply) 전경(사진=김영란 기자) |
새로운 시작, 새로운 도전
“미국은 공항에 누가 픽업을 오느냐에 따라 그사람의 직업이 결정된다는 이민사 속설이 있다.” 엔젤 뷰티(Angel beauty supply) 최점균 대표의 말이다.
2003년 최 대표는 잘나가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미국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는 개척자 정신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또 하나의 도전을 위해 태평양을 건너 온 그를 마중 나온 것은 당시 대형 식당과 뷰티 서플라이를 운영하고 있던 매형이었다. 초동학교 2학년이었던 아들을 골프 선수로 키우기 위해 최 대표는 도착한지 3일 만에 뷰티 서플라이 매장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소위 이야기하는 ‘맨 땅에 헤딩’인 셈이었다.
한인들의 비즈니스는 대부분 식료품, 세탁소 등으로 유태인들이 떠난 자리를 메워가는 식이었지만, 그는 비교적 자리잡은 그 업종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역에 발을 내디딘 것이었다.
늦은 이민생활 적응은 예상보다 힘들었다. 처음 해 보는 일에 언어 구사까지 힘들었던 최 대표에게 모든 것은 낯설었다. 모든 것이 처음 보는 것들이었고 녹록지 않은 현실은 막막하기만 했다. 생전 처음 보는 물건들은 포장된 그림으로 익히고, 손님들과의 대화도 반은 눈치로 반은 웃음으로 이어갈 뿐이었고, 그런 상황은 최 대표에게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그대로 주저앉을 수 없었던 그는 낮에는 10시간 일하고 밤에는 adult school을 다니며 언어를 익혀갔다. 이러한 노력이 1년을 지나자 조금씩 상품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미국에 오면 필수 과정이 있다고 한다. 성공한 이민 선배들의 과정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필요없는 과정들이 보였다.” 최 대표는 2년이 지난 2005년 과감히 누나의 사업체를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월 매상 5만불 정도 되는 규모에 매매가가 45만불로 부족한 돈은 주변의 도움을 통해 파트너십으로 인수했다.
본격적인 인생 2막의 시작이었다. 온 정성을 들여 사업을 진행하며 3년을 발버둥 쳤지만 주변 대형매장들과의 경쟁은 버거웠다. 각종 서비스와 영업개선을 시도해도 가격에는 당할 도리가 없는 것을 알았다. 또 뷰티용품 특히 가발의 트렌드는 빨리 변하는데, 시장 파악을 하기도 어려웠을뿐더러 커넥션이 구축된 대형매장에 비해 소형 매장들은 상황이 여러모로 열악했다. 그대로 간다면 비전은 없었고, 그저 먹고 사는 정도에 만족해야 할 판이었다.
운영에 변화를 시도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터득하게 된 최 대표는 주변에 있는 같은 업종 소상공인들을 규합하여 조직을 구성했다. 직접 발로 뛰며 20여 개 소형 매장을 연합해 북가주협회를 탄생시킨 최 대표는 2008년 7월 뷰티쇼가 열리는 뉴저지로 날아갔다. 다양한 상품들과 많은 사람들과의 교류가 열리고 있는 현장은 그에겐 신천지 같았다.
이 행사에서 미주 뷰티 서플라이 총연합회장에게 간절한 도움을 요청한 최 대표는 지역 협회를 가입시켜 신제품, 가격 등에 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됨은 물론 단체 대량 주문으로 가격을 낮추어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딱 맞아떨어지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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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특성을 고려한 최 대표는 지역마다의 손님 특성, 제품 트렌드를 파악하고 저렴한 가격과 새로운 아이디어의 제품들로 마케팅 공략을 해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었다.(사진=김영란 기자) |
위기를 기회로
총연 가입만으로 치열한 뷰티 시장에서 경쟁하기엔 부족했다. 많은 인종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미국 특성을 고려한 최 대표는 지역마다의 손님 특성을 파악해 해당 제품을 갖추고 이를 꼼꼼히 점검해 갔다. 제품 트렌드를 파악하고 저렴한 가격과 새로운 아이디어의 제품들로 마케팅 공략을 해 나간 최 대표의 노력은 성공적이었다.
자신감이 고조된 최 대표는 1호점에 이어 5호점까지 지속적으로 오픈을 이어갔다. 이러한 탄력을 바탕으로 미 전국의 뷰티 서플라이 총연합에 가입을 했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함께 뷰티 쇼에도 참석해 비즈니스에 대한 시야를 키웠다.
하지만 이렇게 성장하는 동안 승승장구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배장을 확대하며 생긴 부채도 만만치 않았고, 무엇보다 확장에 따르는 파트너와의 이익분배도 문제였다. 일정 규모의 회사가 될 때까지는 당장의 이익보다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미래를 봐야한다는 최 대표의 경영 방식과는 달리 파트너는 성장보다 안정을 원하며 현실적인 이익배당을 원했다.
매출은 늘었지만 그만큼 재고도 쌓였고 인건비 또한 만만치 않아 이대로는 성장에 제약에 있다고 판단한 최 대표는 파트너와 2015년 매장을 분할하기로 합의하고, 2개의 매장을 분할해 주고 1호점을 폐점하고 다시 2개로 시작하게 된다.
이후 6호점과 7호점을 더 오픈하고 라스베가스에 3개 매장, LA에 1개 매장을 추가로 오픈했다. 전세계적인 경제침체기인 코로나 시기였지만 뷰티 서플라이 업종은 위기감을 기회로 성장했다. 최 대표는 “아마존이라는 거대한 공룡이 모든 소매 시장을 석권하려고 해도 트렌드 변화의 속도가 빠른 뷰티서플라이 계통에는 공룡의 느린 포식 방식으로는 아직 까지는 힘들다”라고 말한다. 그만큼 비즈니스적인 가치가 있는 분야지만 시대의 유행과 흐름에 선도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을 만큼 치열한 시장이라는 의미다.
최 대표는 “우리 엔젤 뷰티그룹은 더 큰 도약을 할 것이다. 금년에는 대형매장이 캘리포니아에서 처음으로 오픈할 예정이며, 이 매장이 성공하면 이제 대형화 매장시대로 컨셉을 변경해 프랜차이즈로 성장시킬 계획이다. 흑인 마켓에서 벗어나 라티노 시장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확장해 나갈 예정‘이라며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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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주뷰티서플라이총연합회(NFBS, National Federation of Beauty Suppliers)가 주관하는 트레이드쇼(Tradeshow) 최점균 준비위원장(사진=최점균 대표) |
최 대표는 그동안 15년 정도 미주서플라이 총연합회 일을 해왔다. 수석부회장, 이사장직을 수행해 오며 업계 발전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왔던 그는 올해 열리는 트레이드 쇼(NFBS Trade Show)의 준비위원장직을 맡아 종횡무진 하고 있다.
본인의 사업만이 아니라 미 전역에 있는 한인 소상공인들이 성공하는 데에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임하고 있는 그는 올해 8월에 한국의 신지식인 협회에서 인증하는 신지식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동안 치열하게 살아 온 지난 시간에 대한 노력의 산물과 같다.
평범한 이민 소상공인에서 지역 업계를 이끄는 주역으로, 지역 업계에서 해당 전 업계를 선도하는 리더까지... 최점균 대표의 도전과 새로운 모험은 향후로도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소상공인포커스 / 김영란 기자 supu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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